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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북한 정부에서 구월산 삼성사에 그려서 모신 삼신(하느님, 환웅천왕, 왕검단군) 초상화
다음 글들은
김종서 박사님의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문화』중의 제9절 삼신할아버지를 모시던 성전 삼성당” 내용 일부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1. 소도와 삼성당
삼한 78개국의 각 부족국가마다 한 곳씩의 소도가 있었다면,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각 마을에는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삼성(혹은 삼신)을 모신 삼성당(삼성각)이 있었다.
이 삼성당은 삼성사로도 불리었다. 이 구월산 삼성사에서 독립운동의 아버지이자 대종교의
창시자인 나철(1863~1916) 선생이 일제의 학정을 통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을 비롯한 정치 권력자들은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소도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고, 성소인 소도는 해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규모의 성소인 소도가 해체되고, 마을마다 삼성당, 삼성각 등의 소규모 성전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도에서 모시던 자신들의 시조신인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
1세 단군 왕검의 삼신할아버지 신상을 나무로 깎아서 모셨다.
삼신할아버지께 제사를 드리고, 비, 풍성한 수확, 사랑과 결혼, 자손점지,
질병의 쾌유, 무병장수, 학업성취, 시험합격, 가족화목, 자손번창, 전쟁 승리, 평화,
사후 천국에서의 안락한 삶 등의 소원을 빌었다.
2.『조선왕조실록』의 삼신과 삼성당 이야기
1) 『세종실록』의 기록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삼성사가 “구월산 성당리 소증산에 있다.”고 하였다.
또 『세종실록』「세종 십년(1428) 6월 14일」조에, 나이가 많아 우의정 직에서 물러난 유관(柳寬)이
세종대왕에게 상소를 올려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황해도 문화현은 신의 고향입니다. 스스로 벼슬을 그만두고 본향에 내려온 지 여러 해 되었습니다.
여러 노인들의 말을 듣고 비로소 이 고을의 사적이 오래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현의 주산인 구월산 동쪽 고개의 중간 허리에 신당이 있는데 어느 시대에 창건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신당의 북쪽 벽에는 환웅천왕, 동쪽 벽에는 하느님(하나님), 서쪽 벽에는 단군왕검이 모셔져 있습니다.
문화현 사람들은 이 신당을 삼성당이라고 칭합니다.
그 구월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 또한 삼성당이 있는 마을을 성당리(聖堂里)라고 칭합니다.
그 삼성당의 경내 안팎에는 까마귀와 참새조차도 감히 집을 짓지 아니하고,
사슴과 고라니 등의 짐승조차도 감히 경내에 들어가지 아니합니다.
초목이 말라 죽을 정도로 가물 때에 비를 내려주시기를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삼신께 기도하면 즉시 비를 내려주십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단군이 아사달산으로 들어가서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단군왕검의 신위를 삼성당에 그대로 모시지 않고, 어찌 산 아래로 모셔와
기자의 사당에 기자와 함께 모셔야 한단 말입니까?
세종대왕은 유관의 상소를 보류하여 두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유관의 상소에서,
첫째,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삼성의 신위를 모신
삼성당의 경내외의 성소는 신성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참새, 까마귀, 고라니,
사슴 등의 날짐승들과 산짐승들조차도 경외심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삼성당 경내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삼신에게 가뭄에서 구해달라고 기도를 하면
즉시 비를 내려 주는 등의 영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셋째, 당시의 백성들뿐만이 아니라 우의정을 지낸 유관 같은 고위층도,
단군왕검의 신위를 삼성당에서 평양의 기자묘에 합사하는 것을 불경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권의 주도세력인 모화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단군왕검의 신위를
기자묘에 합사시키었다는 것 등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이 유관의 상소를 보류시킨 것은 천제(天帝) 즉,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에
대한 천제를 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단종실록』의 기록
또『단종실록』「단종 원년(1452) 6월 28일」조에, 경창부윤 이선제가
단종대왕에게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이 들으니, 황해도 백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자주 악병이 발병하여
사방으로 차차 전염되어 갔습니다. 북쪽으로는 평안도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경기도 각 현에 이릅니다.
사망한 사람들의 시체가 서로 이어져서 모든 백성들의 집들이 땅을 비로 쓴 것처럼
텅텅 비었다고 합니다. 어찌 까닭 없이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신이 무오년인 1438년부터 기미년인 1439년 사이에 황해도 봉산군에 사는
서리 오성우와 제가 집현전에서 함께 숙직한 적이 있습니다. 신이 오성우에게 황해도에서
자주 악병이 발병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성우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문화현에 단군의 사당이 있는데, 단군신위를 평양 기자묘로 옮기어 모셨습니다.
그 이후부터 괴이한 기운이 뭉치어 신(神)의 형상을 하고 밤에 돌아다니면서 검은 기운으로 진을 이루고
행동하는 소리가 있었답니다. 한 사람이 그것을 바라보고 놀랍고 괴이하여 이를 피하여 숨었답니다.
이것으로써 악병이 일어나서 전파되었답니다.”
또 각 마을 백성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 병의 발병은 진실로 단군신위를 평양 기자묘로 옮기어 모시고,
하느님(하나님)과 환웅천왕의 제사를 모시지 않는 것에 연유하는 것이다. 구월산의 산간 백성들 집에서
돌림병을 일으키는 기운 즉, 여기厲氣가 먼저 일어났다. 점차로 문화현에서 장연, 재령,
신천 등의 각처로 번지어 전염되어 목숨이 끊어지는 사람이 매우 많다.
백성들이 불쌍하다.’ 라고 한답니다.
삼가 생각해보면 세종대왕께서 크게 상심하시어 전의부정 김려생으로 하여금
황해도 의원 5인을 거느리고, 고을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여러 방법으로 병을 고쳐서
구제하게 하였습니다. 세종대왕께서 황해감사에게, ‘문화부터 장연ㆍ황주ㆍ재령ㆍ신천 등 각처의 주와
현마다 모두 여기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을 설치하라. 제물을 풍족하게 준비하여 모든 고을 수령들로
하여금 지극한 정성으로 제계하고 제사를 지내게 하라. 그래서 여기가 사라지도록 하라!’
고 어명을 내리시어 구제 사업을 널리 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성려가 지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이 병은
점점 더 만연하여갔습니다. 다른 지방까지 번져가서 남김없이 전염되어 죽으니
이 피해를 장차 어찌하겠습니까?
……아주 아득히 오랜 옛날 단군조선 건국초기 사람들이 그들의 근본을 잊지 못하여
사당을 처음으로 건립한 것입니다.……사당의 명호를 삼성(三聖)이라고 칭하였으나 어느 때에
창건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지난번에 평양의 기자묘로 단군신위를 옮겨 모셨습니다.
그러면 하느님(하나님)과 환웅천왕의 두 분 신위는 어느 땅에 모시겠습니까? 이것은
이 땅의 백성들에게 단군께서 원망을 일으키시지는 않겠지만, 하느님(하나님)과
환웅천왕의 두 분 신께서는 반드시 괴이한 일들을 마음대로 일으키시고,
여기를 지어 둠으로써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처음으로 오성우의 말을 듣고 개의치 않았었는데, 지금 유관의 상소를 보니
말의 뜻이 서로 모순되지 아니하고 일치합니다. 조정에서 다시 의논하여 삼신(三神)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옛 삼성당을 수리하고, 지붕을 덮어서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세분 삼신상(三神像)을 명나라 조천궁에 있는 열숙의 상과 같이 만들거나, 삼차하 해신의 모양과 같이하여
좌우에 나누어 앉혀 모시고, 존경하고 경배하기를 옛날과 같이하고, 어명으로 조정의 관리들을 파견하여
삼신을 모신 성당에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면,
삼신께서 곧 밝게 살피시고 바로잡으시어
복을 내려주시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위와 같은 이선제의 상소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단군왕검의 신위를
기자묘로 합사하고, 하느님(하나님)과 환웅천왕께 제사를 지내지 아니하였으며,
삼신 성전인 삼성당을 방치하였기 때문에, 하느님(하나님)과 환웅천왕의 노여움으로
세종대왕 때로부터 단종대왕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악병이 창궐하게 되었다는 것,
그 악병으로 황해도, 평안도, 경기도 지방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세 분 삼신의 신상을 다시 세우고 간절히 기도하면,
악병을 거두어주고 복을 내려 줄 것이라고 일반 백성들로부터 고위 관리들까지도
굳게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삼신을 모신 삼성당을 ‘성당(聖堂)’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로서 야훼(여호와)와 예수에게 예배하는 천주교의 교회를 가리키는 성당이
본래는 한국인들의 시조신이신 하느님(하나님),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삼신할아버지를
모시는 성전의 명칭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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